모양성

2017. 4. 6. 03:48나의 이야기


고국을 방문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모양성이다.

지금은 고창읍성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우리들은 그곳을 모양성이라 부른다.


여학교 시절, 신흥동 584번지 우리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면 아마 20여분 걸리지 않았나 싶다.

읍내 신작로를 따라 올라가 조금 언덕진 공북루에 다다르면 넓은 성안의 뜰이 보이고, 조각가 김수현씨가 기증했다는 여인 나체조각상이 있는 연못을 지나면 교정이 나온다.


그 시절, 고창 군 소재지에 여자 고등학교로는 우리 학교가 유일했지만 그마저도 아마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나의 두 언니가 이 학교를 다녔고, 나도 내 동생도 역시 이 학교에서 소녀적 꿈을 키웠다.

학교의 교장, 교감, 여러 선생님들은 나를 보면 아버지의 안부를 묻기도 하시고, 서울에 있는 언니들의 근황을 묻기도 하셨다.


그 학교는 사립이었고 옹색했던 살림살이에 수업료가 밀리기는 다반사였다. 수업료가 밀리면 담임 선생님들은 한사람씩 앞으로 불러내어 채근도 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내 수업료 독촉을 하기도 하셨는데, 내 차례가 오면 선생님은 채근하는 대신 미소와 함께 아버지, 언니들의 안부를 물어주셔서 얼마나 마음이 따뜻했던지...


아름드리 소나무와 벚꽃나무들로 우거진 고궁에 여학교가 위치해 있었기에 꿈많은 우리 여학생 시절은 더욱 빛이 났다.

오후의 지루한 수업시간, 교실을 살짝 빠져나와 소나무 숲을 거니노라면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도, 솔내 가득한 나무들도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때론 그저 풀밭에 누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져들기도...



봄이면 벚꽃의 행렬로 장관을 이루었고, 겨울이면 아름다운 설경으로 마음을 설레었던 곳...

여름이면 아카시아 향기로 가을이면 코스모스의 물결로 소녀들의 감성을 키워주던 곳...

사시사철, 성안의 여기저기, 우리 소녀적의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

성곽, 여기저기에 나의 숨결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은 나의 마음의 고향

그리웁고나..



교정 뒤의 숲길을 조금 올라가 한 성곽에 올라서면 왼편으로 커다란 호수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였다.

성곽 주위의 성벽은 우리 여학생들도 용기내어 내려 갈 수 있을 만큼 군데군데 돌들이 빠져있어 발 디딜 틈들을 내주었다.

교복 치마를 입은채로 우리는 그 성벽을 타고 오르내렸다.

무더운 여름날, 저수지 주변의 돌로 쌓은 뚝길을 거닐며 더위를 달래었고 뚝길에 겉터 앉아 짙푸른 저수지의 깊은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누군가 물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깊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갈 거 같은 무섬증이 들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성안에는 '보안사' 라는 자그마한 절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내 친구 S는 그 절 주지스님의 딸이었다.

아마 스님으로 출가하시기 전, 결혼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추측했을 뿐 친구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친구 S는 서울에 엄마와 언니 오빠도 살고 계셨고, S만 여중을 시골에 내려와서 다니게 되었다.

S는 큰 키와 까만 피부에 마른 체구를 가진, 참 매력적인 친구였다.

우리 둘은 서로를 참 좋아했었다.


가로수도 없어 칠흙같이 어두운 밤길을 S가 살고 있는 절집에 참 많이도 오르내렸다.

우리안에 있던 사춘기 시절의 고민, 아픔등을 얘기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2년 전,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만난 S는 여학교 시절의 모습에서 별로 변한게 없어 보였다.

까망 피부에 그 시절 그대로의 마른 모습, 매력적인 여인으로..


모양성 안에 우리가 다녔던 여학교는 더 이상 없다. 친구 S 의 아버지가 계셨던 절도 없어졌다.

군청 가까운 곳으로 이전했다는 여학교의 교정은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을 뿐 찾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 후 남편이랑 아들들과 함께 고향을 몇번 방문했을 때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가보고, 성안에도 올라가 성벽을 함께 걸어보면서도 여학교 교정은 멀리서 내려다 보기만 했다.


그렇게 소녀적의 꿈을 함께 나누었던 옛 친구들...

지금은 그저 이렇게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아주 드물게 카톡으로 소식을 전하거나, 아주 드물게 전화로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중, 소꼽친구라 할 수 있는 K는 같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이 친구하고도 그저 아주 가끔씩 소식을 주고 받는다.


인연이란것..

친구라는 관계..


대학 친구들 몇명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스트렐리아에 살고 있는 친구 Y..작년에 여행가서 40년만의 반가운 해후를 하고 친구집에서 이틀을 함께 지내며 회포를 풀었건만, 다녀온 후로 또 나의 무심병이 도져서 제대로 친구의 도리를 못하고 있다.


새삼 내가 많이 무심한 사람이었구나 되돌아본다.

무에 그리도 바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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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자연석 성곽으로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백제 때 고창 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극복을 위한 국방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50,172평으로 동서북문과 옹성 3개소, 치성 6개소,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대부분의 건물이 손괴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22동 중 14동(동헌·객사·풍화루·공북루·진서루·등양루·성황사·관청·작청·내아·향청·서청·장청·옥)이 복원되었고 앞으로 8동의 관아 건물도 복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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